Overview

나의 작업은 언어와 형상, 그 이전의 근원적인 생명력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화면을 지배하는 ‘블루(Blue)’는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새벽과 저녁의 경계에서 만난 찰나의 시공간이며 모든 존재의 시작과 끝이 맞물리는 지점이다. 과거 구례 화엄사에서 마주했던 그 검푸른 하늘과 범종 소리의 진동은 나에게 번개 같은 직관을 선사했고, 그날 이후 푸른색은 내 작업의 숙명이자 본질이 되었다.

사람들은 내 그림 속에서 꽃을 보지만, 나는 ‘꽃이 아닌 꽃’'을 그린다. 한자 ‘꽃 화(花)’가 지닌 의미 중에는 단순히 식물의 꽃이 아닌 사물의 '핵심'과 '중심'이라는 뜻이 있다. 나는 화려한 겉모습보다는 생명 그 자체의 응축된 에너지와 생식적 본능에 집중한다. “보이는 것이 정말 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름 붙여진 형상을 해체하고 언어로 정의되기 이전의 순수한 존재 상태를 포착하고자 한다.

나의 붓질은 인위적인 계산이나 밑그림을 거부한다. 나는 막그린다의 ‘막’이라는 단어가 가진 힘을 신뢰한다. 이는 함부로 그린다는 뜻이 아니라, 오랜 수련과 절제를 거쳐 내면화된 감각이 아무런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상태를 의미한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처럼, 붓은 그저 그날의 호흡과 리듬을 따라 화면 위를 유영한다. 그림은 이미 내면에서 완성되어 있으며, 나는 그 찰나의 숨결을 기록할 뿐이다. 붓질의 속도는 그날의 감흥에 따라 변주되며, 평면의 화면은 깊이 있는 무한한 공간감으로 재구성된다..

매체에 따라 나의 호흡은 결을 달리한다. 안료가 깊숙이 스며드는 한지 위에서는 살아있는 ‘선(線)맛’의 리듬을 살리고, 캔버스 위에서는 보다 강렬하고 현대적인 색채로 직관의 힘을 드러낸다. 그리고 안료들은 모두 한지와 캔버스로 스며들어 매체와 물감이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질감으로 완성된다. 최근 나의 시선은 숲의 풍경을 넘어 일상의 작은 생명들과 자연의 오브제로 확장되고 있다. 길모퉁이의 고양이, 긴 세월을 견디며 ‘막’ 생긴 돌멩이와 바위, 화분 속에서 흐드러지는 식물들까지 — 이 모든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 나의 푸른 정원 안에서는 저마다의 주인공이 된다.

관람객들이 나의 작품을 대할 때 어떠한 편견도 없이, 마치 누군가의 지나온 하루를 엿보듯 편안한 호흡으로 마주하기를 바란다. 이 푸른 정원 속에서 각자가 감춰두었던 저마다의 정체성과 생명의 리듬을 발견할 수 있다면, 나의 작업은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작가 김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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